비 오던 주말에 사주 어플 깔았다가 묘하게 기분만 찝찝해졌다

비 오던 주말에 사주 어플 깔았다가 묘하게 기분만 찝찝해졌다

지난 주말, 정말 할 일이 없었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사무보조 알바를 하느라 일주일 내내 모니터만 들여다봐서 그런지 눈도 뻑뻑하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만 하다가 무심코 앱스토어 순위를 확인하게 됐다. 다들 심심했는지 점성술이나 운세 관련 앱들이 상위권에 있더라. 평소에 사주나 타로 같은 걸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냥 ‘무료 사주보기’라는 문구에 홀리듯 하나를 설치했다. 굳이 이름을 말하자면 ‘점신’인가 뭔가 하는 유명한 거였는데, 예전에 친구가 자기 사주가 엄청나게 기구하다며 깔깔대던 게 기억나서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

앱 설치하고 생년월일 입력하는 그 짧은 순간

앱을 켜니까 무슨 회원가입을 하라고 난리다. 카카오톡으로 연동하면 1초 만에 끝난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생년월일이랑 태어난 시까지 적어야 정확하다는데, 사실 나는 내가 몇 시에 태어났는지 정확히 모른다. 엄마한테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대충 ‘오시’쯤일 거라고 짐작해서 입력했다. 옛날에 어디서 들었는데 오시생은 화 기운이 강하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정보를 입력하고 나니 무슨 주역 64괘니 뭐니 하면서 화려한 그래픽이 화면을 채웠다. 왠지 모르게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그냥 킬링타임용인데 왜 그랬을까. 한 2분 정도 기다리니까 결과가 주르륵 나왔다.

결과창에서 마주한 애매한 말들

결과를 보는데, 사실 봐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올해는 재물운이 좋으나 사람 조심을 해야 한다’는 식의 뻔한 말들뿐이었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는 재회운세나 궁합 풀이도 이런 식인가 싶었다. 사실 내가 진짜 궁금했던 건 다음 달에 예정된 이직 면접인데, 그런 구체적인 건 당연히 무료 버전에는 안 나온다. 오히려 무료로 봐주는 건 ‘넌 올해 전반적으로 무난해’ 같은 아주 폭넓은 이야기들뿐이다. 괜히 더 알고 싶어지게 만들어놓고, 막상 중요한 건 결제창으로 유도하는 구조가 딱 보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돈을 낼 생각은 없었지만, 한 990원 정도면 볼까 싶다가도 그마저도 아까워서 그냥 껐다.

무료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건가 싶기도 하고

이런 경험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제천비행장 눈썰매장 같은 곳에 놀러 갔을 때도 보호자용으로 무료 사주 체험 부스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줄 서서 기다려봐야 결국은 ‘올해 몸조심하세요’ 수준의 덕담만 듣고 왔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서 ‘내가 왜 이런 걸 보고 있었지’ 싶은 현타가 왔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처음에는 그냥 장난으로 시작했다가도 결과가 좀 애매하면 ‘아니, 이게 맞나?’ 싶어서 괜히 찾아보게 된다. 사주 마니아들이 왜 그렇게 온라인 서비스를 찾아 헤매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다. 답답할 때 누군가 혹은 무언가 내 인생을 좀 대신 정리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거니까.

굳이 사주를 본다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사실 사주가 정말 맞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사무보조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건, 결국 내 인생의 변수라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거다. 운세 어플은 그런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너는 잘하고 있다’ 혹은 ‘조금만 버텨라’라고 대답해주는 일종의 감정적인 쓰레기통 같은 역할이 아닐까. 물론 그 앱이 내 미래를 알 리는 없지만, 비 오는 주말에 핸드폰을 붙잡고 앉아 내 사주가 어떻고 하는 걸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습긴 했다.

여전히 남는 찝찝함

결국 무료 사주풀이 어플을 삭제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후련한 건 아니다. 앱을 지우고 나서도 ‘진짜 내가 재물운이 안 좋은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게 사주가 가진 힘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참 영악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에는 이런 거 말고 그냥 유튜브에서 ASMR이나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굳이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까지 팔아가면서 얻은 건, 아무 의미 없는 글자 몇 줄과 조금은 허무한 주말 오후 시간뿐이었다. 다음번에 또 심심해지면 잊어버리고 다시 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댓글 1
  • 비 오는 날, 무심코 설치했는데 괜히 불안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