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벽 두 시쯤이었을 거다. 잠은 안 오고 머릿속은 온통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점집을 찾아간다고 하면 왠지 무겁고 무서운 분위기를 떠올렸는데, 요즘은 그냥 앱이나 전화로 다 해결하는 분위기라는 게 문득 생각났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켰다. 사실 이런 걸 믿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고 ‘아무 일 아닐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검색창에 뜬 낯선 번호들과 망설임
‘일산점집’이니 ‘논현동점집’이니 검색어를 몇 번 바꿔가며 찾아봤다. 블로그에 올라온 홍보 글들은 하나같이 다 비슷했다. ‘용한 곳’, ‘무조건 맞춘다’는 말들이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렸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띈 어떤 블로그 포스팅이 있었다. 깔끔한 광고형 글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힘들 때 전화 상담을 받았다는 후기였는데, 그 글에서도 상담 비용을 언급했다. 보통 분당으로 계산하는데, 대략 1분당 1,500원에서 2,000원 사이였다. 어떤 곳은 30분 단위로 끊어서 5만 원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상담하는 분들 중에는 신점뿐만 아니라 사주나 타로를 섞어서 봐주는 분들도 많았다. 가격이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서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내 돈을 내고 통화하는 건데도, 막상 전화를 걸려니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이 새벽에 당장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더 서글펐다.
낯선 목소리와의 20분 통화
결국 한 곳을 골라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무적인 말투였다. 대뜸 생년월일을 물어보시더니, 내 사주에 남자가 없다는 둥 자식이 어떻다는 둥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안재현 씨 기사에서나 보던 그런 뻔한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통화는 시작되었고, 돈은 분 단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그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참 크게 들린다. ‘직장 옮기지 마라’, ‘올해는 조심해라’ 같은 말들이 내 귀에 쏙쏙 들어박혔다. 20분 정도 통화했을까. 비용은 4만 원 가까이 나왔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이상하게 허탈했다.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지금 돈을 내고 남의 사주팔자 이야기를 들으며 안심하려 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스마트폰 속의 위로가 진짜일까
요즘은 아이두링크 같은 플랫폼을 통해 상담사들이 직접 자기 이름으로 홍보하기도 하고, 앱을 통해 예약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기술은 참 좋아졌는데, 그만큼 내 불안도 디지털화된 게 아닌가 싶다. 예전처럼 굿을 하거나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부담은 확실히 적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화를 끊고 나면 잔향이 남는다. 그 무당 혹은 상담사가 했던 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거다.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가도, 안 좋은 말을 들으면 괜히 그날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인다. 이게 과연 힐링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불안 주입인지 잘 모르겠다. 상담료를 내고 내 운명을 통제받는 느낌이 나쁘진 않았지만, 사실은 나도 이게 일시적인 처방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며칠 뒤 찾아온 묘한 무력감
사건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회사에서 일이 좀 꼬여서 상사에게 깨진 날이었다. 또다시 전화기를 잡을 뻔했다. ‘그때 그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더라?’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무서워졌다. 은평구 쪽 신점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점쟁이 한마디로 바뀔 리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자꾸 기대고 싶어 한다. 아마 다음번에 또 정말 힘들고 잠 못 드는 밤이 오면, 나는 또 습관적으로 전화번호를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번처럼 그냥 혼자 끙끙 앓다가 잠들거나. 해결책은 없는데 고민만 쌓인다. 이런 상담이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외로움을 달래는 가장 비싼 방식일 뿐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의 고민보다 통화를 마친 후의 고민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전화기를 붙잡고 싶다는 마음이 저랑도 비슷한 것 같아요.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해서 불안할 때, 무언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